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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주+주장 자유여행

여행분류 | 1일투어
출발도시 | 상하이
출발시간 | 매일출발가능
예약시간 | 3일전 예약 요망
출발인원 | 4인출발기준 ( 기타 인원 별도 문의 )
조 회 | 1540
성인 가격 | ¥550원
성인 가격 | w 100,000원
여행일정
포함 사항

1.전용차량 
2.석식포함  ( 선상식)
3.관광지 입장료 
4.가이드 
5.기사/가이드팁

불포함 사항
1. 여행자 보험 
2. 기타 개인 경비 
3. 중국<->한국 구간 왕복티켓 

4. 호텔필요시 별도예약

4명시:550원/인   10명시:480원/인


여행지소개
소주 소개

면적은 6264평방키로메터이며 인구는 599만명이며 그중 시내인구가 백만명정도로서 상해보다는 상당히 작은 도시이지만 중국의 역사문화유적지의 하나로서 2500년의 도성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물의 고향,원림의 도시이기도 합니다.연평균강우량은 1200㎜입니다.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울만큼 사방이 운하로 둘러있고 작은 운하들이 교차되여 있으며 호수,강,연못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원이 있고 따라서 풍경이 아름다운 구릉이 이어지며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되여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2500년전 춘추시대 오나라왕 함려는 오자서한테 명하여 함려대성을 건설하였는데 그 둘레의 길이가 47리이고 수륙성문이 여덟개, 크고작은 골목거리가 60여개로 장방형모양의 성지를 건설하였는데 그 성지가 대체적으로 지금의 소주성의 기본규모를 가져왔습니다.진시황의 전국통일후 소주를 오현이라고 불렀으며 수나라때부터 소주라고 불렀습니다.
주는 깨날소 고을주인데 그 이름으로부터 어미지향이라는것을 알수있습니다.소주소자는 풀소자에 어미어자 벼화자 세부분으로 되였는데 이 글자로부터 소주는 옛날부터 땅이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기로 강남이 족하면 천하가 편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항이 있다.>이런말 들어보셨죠?여기서 소는 소주를 말하는것이고 항은 항주를 말하는데요.소주가 예로부터 천당에 비하여 살기 좋은곳으로 소문이 난것은 <어미지향>이기때문입니다.또한 소주는 옛날 비단장수 왕서방의 고향으로서 소주지역의 경제발전의 주역은 바로 비단이였습니다.중국은 당나라때부터 시작된 율동제에 의하여 중국의 곤복을 색갈별로 정했는데 그옷감은 바로 비단이였습니다.정교하고 아름다운 비단은 물론 자수와 옥,공예품으로도 유명합니다.또한 옛말에 <강남의 정원은 천하에서 제일이고 소주의 정원은 강남에서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을만큼 소주는 정원으로 유명한 고장인데요.소나라때는 많은 관료들이 이곳에 나무를 심고 정사를 지었으며 20세기초에는 이미 200여군데의 개인정원이 조성되였습니다.


 


 호구탑

호구산은 아주 먼 옛날 해용산이라고 불렸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다 바다였는데, 그 중 섬 하나만 밀물이 올땐 섬이 잠겨 보이지 않다가 썰물일 때 수평선에 섬으로 드러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해용산이라고 부르게 된거죠.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함려는 해용산에 성을 쌓고 오나라를 지배하게 되는데요. 그 때 월나라 국왕 윤상이 사망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기회를 놓칠세라 서둘러 군사를 거닐고 월나라로 쳐들어갔는데 이 소식을 접한 태자 구천이 묘한 계책을 씁니다. 쉬지않고 달려온 오나라 군사가 월나라 경계에 들어서자 마자 군사로 변장을 한 사형번죄자들을 풀어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을 하게 했습니다. 스스로 목을 베는 군사들을 보고 너무 신기하여 오라나 군졸들이 그리로 몰려가서 구경을 하였는데, 그 틈을 타서 매복하고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마차를 타고 있는 함려를 향하여 진공을 가했습니다. 그 경활중에 함려는 발목에 칼을 맞고 쓰러져 죽게됩니다.
해서 함려의 시신을 황궁이 있는 해용산에다 민부 10만명을 동원하여 지하궁전을 만들고 그 안에 안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사 3일만에 함려 묘 위에 백호 한마리가 나타나 크게 울부짖다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향간에서는 함려의 패기가 호랑이로 현신되었다는 설이 돌게 됩니다. 그 뒤로 호랑이 호자와 언덕 구자를 써서 호구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주장 

태호안의 섬 주장진 쑤조우(소주)가 중국의 베니스라면 주장은 소주의 베니스라고 할 수있다. 주장은 수많은 운하와 호수, 그리고 삼각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입구로 1200년 된 오래된 가옥들이 남아있는 도시이고 운하가 마을을 관통한다. 주장은 강소성 곤산시 경내 서남쪽 30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소주(38Km), 동쪽으로는 상해와 접해있다.  즉 소주와 상해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전 진의 면적이 36평방 킬로미터이고, 인구 2만3천명의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답고 역사가 오래된 조그마한 진(鎭)이다. 주장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가히 천년고진(天年古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史書기재에 따르면 북송 원우년(1086년) 周迪功郎이 불교를 숭상하여 200묘의 庄田(옛날 군주, 귀족들의 장원의 田地)을 전복寺에 기증하였는데 백성들이 이를 감격하여 이 밭을 주장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나라 중엽 전기적 색채가 있는 인물인 강남 부호 선완산(沈萬三)의 부친 선유(沈佑)가 이곳으로 이사하여 장사를 시작했는데 크게 성공하여 이 일대가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청나라 때는 거주민들이 많고 강남 일대에서 유명한 상업 중심지로 되었다. 청나라 강희 초년에 정식으로 현재의 지명과 같은 주장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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